<사회의 Venom>
-영화 베놈 : Let there be carnage 영상 저널
히어로를 돋보이게 해 주는 빌런에서, 그 매력을 인정받고 하나의 독자적 캐릭터가 되기까지.
물론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악당이라는 이름 대신, ‘안티 히어로’ 라는 굴욕적 ‘애칭’을 붙여야 하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는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으로 투박하게 빌드업 된 그의 캐릭터성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에게 맛보지 못한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돈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살육에 미쳐있다는 점. ‘약자 혐오’ 같은 찌질한 것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광기에 사로잡혀있다는 점. 범죄를 계획함에 있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시리즈의 주인공인 ‘배트맨’을 무력화시키는 유일한 적수라는 점. 결국 그는 악당이라는 이름 대신,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그런 흐름에 따라 우리는 솔로무비로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은 매력적인 빌런들 (마치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다면 십년 내에 솔로무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의),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시각으로 솔로무비를 만들어 낸 악당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처럼,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말레피센트’처럼.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악당, ‘베놈’처럼.
영화 베놈은 ‘심비오트’ 라는 외계 생명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1편에서는 기자 에디 브록이 취재 과정 중 우연히 외계 생명체 베놈을 만나게 되어 숙주가 되고 또 다른 심비오트인 라이엇과 라이프 사의 사장 드레이크와 싸우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편의 쿠키 영상에서 봤듯이 2편에서는 연쇄살인마 클리터스 캐서디와의 전투로 진행되었다. 1편에서 베놈과 완벽한 결합에 성공하고 나쁜 사람들만 잡아먹기로 약속한 뒤 공생에 들어간 에디는 연쇄 살인마 클리터스 캐서디와 인터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클리터스에게 피의 일부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베놈과 결합한 에디의 피는 곧 증식해 새로운 심비오트를 만들어 냈고 클리터스는 새로 만들어진 심비오트 ‘카니지’와 결합하게 된다. 클리터스는 곧장 탈옥해 자신의 보육원동기이자 음파 초능력자인 여자친구를 찾아가고 둘은 자신들을 떨어뜨리고 가둔 모든 이들을 죽인다. 그 과정에서 베놈과 에디는 클리터스에 대해 조사하던 중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고 곧 자신들의 피로 인해 클리터스가 심비오트와 결합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베놈과 에디는 클리터스의 편지로 그들의 결혼식에 대해 알게 되고 에디의 전 여자친구인 ‘앤’이 납치되어 그녀를 찾으러 나선다. 최후의 전투, 베놈은 자신보다 위험한 카니지와 에디 역시 연쇄 살인마 클리터스와 싸우게 되고 카니지는 점점 클리터스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베놈은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3 편의 악당 에디 브록이다. 스파이더맨에서 에디 브록은 주인공 스파이더맨과 대립하는 기자로 자신이 사진을 합성했다는 사실을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가 폭로해 해고당한다. 또한 당시 좋아하던 여자인 그웬 스테이시가 스파이더맨에 관심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스파이더맨을 조종하던 심비오트가 에디에게 옮겨가며 완성형 베놈으로 스파이더맨을 죽이려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당의 포지션에서는 상대적으로 비겁한 행동을 일삼고 악한 행동을 많이 했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된 베놈에게서는 ‘법적’으로 나쁜 행동은 있을지 몰라도 ‘멋’없는 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다.
대중들이 안티히어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착하기만 한 주인공은 따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매력은 언제나 정의로운 마음, 선한 마음,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겸손 등에 있다면, 데드풀의 매력은 정의로움은 없지만 최소한의 선을 가지고 행동하며 폭력, 살인 등의 범죄행위에 있어 ‘복수’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면 그것을 흔쾌히 하는 것에 있다. 현대인들에게, 역경과 고난을 딛고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승리하는 주인공은 더 이상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어필되는 캐릭터는 잘나서 ‘재수’없는 캐릭터이거나, 자신이 당한 일은 곱절로 갚아주는 복수심, 나쁜 놈을 향한 살인과 폭력 등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안티 히어로이다. 영화 ‘조커’의 계단 씬에서 볼 수 있듯이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이 들지만, 올라간 계단을 내려오는 건 춤이 춰 질만큼 쉽고 간단하다. 자신의 힘을 타락한 정의로 사용하는 것은 '정의'만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현대인에게 어울리는 히어로는 더 이상 노력이 필요한 히어로가 아니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겨우 ‘정의로움’만을 추구하는 영웅은 현대인이 따라하고 싶은 주인공이 아니다.
유행하는 문화 콘텐츠는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웹 소설이 유행하면서 가장 많아진 소재는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 세계에서 환생하는 소재이다. 이때 주인공은 ‘먼치킨’. 능력도 뛰어나고, 지식수준도 월등해 누구든지 좋아하는 인물. 주변의 시기질투 역시 가볍게 이겨내고 난관에 부딪혀도, ‘사이다’ 감성으로 한-두 편 만에 해쳐나가 그저 ‘행복’하게 살 뿐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유식 해지고 유능해 지기를 바라는 욕망이, 문화 콘텐츠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안티 히어로 영화가 유행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안티히어로의 주인공들은 기존의 전통적 영웅들처럼 큰 고난과 역경을 거치지 않는다. ‘정의’나 ‘선’처럼 행동을 제약하는 가이드라인 역시 없다. 그저 제 멋대로 살다가, 한번, 착한 행동을 할 뿐이다. 결국 사람들이 빌런 영화, 안티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처럼 사랑받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영웅이라면 지켜야 할 의무는 피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캐릭터는 악당 본연의 매력을 잃고 히어로의 깊이감 마저 가지지 못하게 된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 버려야 했던 ‘악당스러움’은 악당 그 자체로 좋아할 수 있었던 캐릭터 성을 버리게 만든다. 악당이 아닌 ‘안티 히어로’ 라는 명칭으로 거머쥐게 되는 주인공의 자리는 정통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 영웅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리고 아파하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만이 진정한 영웅이 된다. 이것은 영웅의 필수요소이다. 누군가는 친구의 죽음으로, 누군가는 가족의 죽음으로, 누군가는 미숙한 자신의 자아로. 흔들리고 아파하며 스스로 뿌리를 굳게 내려야 한다. 오롯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이 고난과 역경이 없이 자란 영웅은 약자의 위치를 이해하지 못하며, 악당과 맞섬에 있어 타협하려 들거나, 포기하려 든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히어로가 아니다.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히어로가 될 수는 없다. 안티히어로로 명명되는 모든 캐릭터들은, 결국 권리를 요구하며 의무를 무시한,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캐릭터들과, 자신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했던 악당 제작자들의욕망과, 영웅으로 칭송받고 싶지만 그 자질은 악당에 가까운 대중들의 욕망이 뒤섞인 흙탕물일 뿐이다. 히어로가 되고 싶어서 정의로움을 간직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싸구려 복수심으로 행동하면서도 영웅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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