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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oved each other so much

해외 영화

by silversong 2021. 11. 2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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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oved each other so much.

-영화 아네트 영상 저널

 

재능의 불균형으로 일어난 참극과, 서로를 지독히도 사랑한 두 남녀가 서로의 파멸을 바라는 이야기. 그 속에서 희생되는 한 아이. 아네트. 엄마의 아네트도, 아빠의 아네트도 아닌. 아네트.

 

 

이 영화를 보기 전 누군가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다. 필시 그 사람은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오프닝 시퀀스로만 판단했거나, 주인공들이 예술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런 속단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굳이 따지자면, 뮤지컬보다는 오페라에 가깝다. 그 어떤 대사도 나오지 않고 모든 언어가 노래의 가사로 나온다.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내면을 토로하는 독백 모두 애잔한 선율과 함께 흐른다.

 

 

오페라가수 안과 코미디언 헨리는 재능 있는 엔터테이너이자 예술가이다. 둘은 상반되는 예술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 후 딸 아네트를 낳고 살게 된다. 그러나 헨리는 과거 연인들에게 폭력적인 성향에 대한 폭로를 당하게 되고 안은 불안과 함께 헨리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결혼과 출산 후 둘에게 찾아 온 변화는 상반된다. 안은 승승장구하며 오페라계의 디바가 되고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대중들과 소통하지만, 헨리는 일자리가 끊기고 코미디적 재능도 떨어진 채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다. 바쁜 안을 대신해 아네트의 보육을 맡은 헨리는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안과 헨리는 각자에 대한 사랑과 함께 무시무시한 감정을 싹틔운다. 둘 사이의 불화설이 기사로 돌게 되자, 둘은 아네트를 데리고 가족 여행을 나서게 되는데. 풍랑을 맞은 배에서 술에 취한 헨리는 실수로 안을 잃게 된다. 헨리는 딸 아네트를 데리고 배를 빠져나와 구출되지만 아내를 죽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사고 이후 안의 유령은 헨리를 찾아오고 그녀는 아네트를 통해 그를 괴롭히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아네트는 그런 엄마의 재능을 닮기라도 한 듯 빛을 받으면 안과 같은 음색으로 노래를 하게 된다. 죽은 아내를 떠올리면서도 아네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헨리. 안의 직장동료였던 지휘자를 불러 아네트를 데리고 전세계 순회 공연을 펼친다. 끝없이 노래하는 아네트와 죽은 안을 사랑했던 지휘자. 아내의 유령을 보며 점차 딸을 외면하는 헨리.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결국 헨리는 아네트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한다.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이 지닌 자신이 모르는 폭력성을 두려워하고 남성은 여성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재능에 열등감을 느낀다. 결국 남성의 열등감은 여성이 기대하던 폭력성으로 나타나며 여성은 자신이 외면하던 남성의 이면에 희생된다. 이해할 수 없는 가부장적 모습이 담긴 남성은 자신이 여성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실, 이 영화는 남성과 여성이 바뀌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기삿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느낄 열등감조차 없을 테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매일 밤 스스로를 죽여 관객을 구원하는 성스러운 직업을 가진 것이 아내이고, 마구잡이로 떠들어 대며 실없는 농담으로 관객을 죽여 버리는 것이 남편이 된다. 이른바 하위문화라는 인식으로 사람들은 안같은 오페라 가수가 겨우 헨리같은 코미디언을 만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헨리는 의도치 않게 신데렐라의 기분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결국 헨리는, 돌아오지 못할 선택을 하게 된다.

 

가족 구성원간의 격차-돈이든, 권력이든-는 필연적으로 열등감을 낳는데 보통은 이를 수용하거나 회피한다. 전자의 경우 내조의 달인이 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이혼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조종한다. 아내와 자신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아내를 주저앉히거나, 아내의 위상을 폄하하거나, 혹은 폭력적 행위로 아내를 굴복시킨다. 이것은 사랑같은 감정과는 별개로 일어나는 일이다. 헨리 역시 안을 사랑했으나 안의 재능까지 사랑한 것은 아니었고 결국 그녀를 죽임으로써 그의 열등감을 제거했다.

 

그러나 극이 여기서 끝난다면 이것은 평범한 현실 영화에 그칠 것이다. 영화에서는 죽은 안의 유령이 나타나고 그녀 역시 사랑하는 헨리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헨리가 그녀에게 행했던 폭력만큼 잔인하게, 결국 그가 스스로 파멸하게. 우리는 이 지점에서 희생되는 매개체에 주목해야 한다.

 

아네트. 안과 헨리의 딸이자, 헨리를 향한 안의 저주에 사용되는 도구. 헨리의 과욕을 뒤집어 쓸 희생양. 결국 제 어미의 손을 타고 제 아비를 파멸로 이끌어 갈 아네트. 꼭두각시처럼 자신을 위하는 그 누구의 손길도 받지 못한 인형.

 

 

이 영화는 지독하게 서로를 사랑하기만 한 두 남녀가 부부라는 이름을 넘어 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을 그려낸다. 둘 사이의 감정싸움은 결국 아네트를 희생시킨다. 구체관절인형으로 등장하는 아네트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갈등하고 둘 사이의 사랑싸움, 혹은 진짜 싸움에 휘말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영상 저널의 제목처럼, 둘은 서로를 너무 사랑해 둘 사이의 자식마저 사랑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타인에게서 받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자신보다 약자에게 푸는 습성이 있고 이는 결국 먹이사슬을 타고 내려 길가의 고양이를 걷어차이게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안과 헨리의 결혼 이후 언론과 대중들은 헨리를 괴롭힌다. 그들에게는 헨리가 약자이다. ‘감히코미디언 주제에, ‘감히우리의 디바 안과 결혼하다니, ‘감히폭력범 주제에. ‘감히아이를 낳고 잘 살다니. 결국 자신의 일터에서 마저 대중에게 외면당한 헨리는 그 대중에 끼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약자에게로 폭력성을 향한다. 아내를 죽였다는 농담을 하고, 결국 아내를 죽이게 된다. 안 역시 자신이 당한 폭력과 열등감을 또 다른 약자에게 대물림한다. 자신의 딸. 아네트에게 악마같은 자신의 재능을 물려주고 헨리가 그 재능을 이용하게 한다. 자신의 딸이 이용당하며 마리오 네트 인형처럼 살게 만들며 자신의 대리인으로 만든다.

 

 

 

결국 아버지의 살인을 증언한 아네트는 감옥에 있는 헨리를 찾아가게 되고, 헨리는 끊임없이 안을 떠올리며 심연을 주의하라 말하지만 아네트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이다. 가장 보호해야할 부모라는 존재를 벗어나 아네트 그 자체로 살게 된 아이는 폭력의 사이클을 끊고 스스로 성장할 것이다.

 

 

 

(여담으로, 안을 상징하는 색은 빨강, 노랑 등 채도가 높고 명랑하다. 그러나 반대로 헨리의 색은 탁하고 짙은 남색, 녹색등에 해당한다. 직업만큼이나 삶의 사이클도, 그리고 색도 다른 두 남녀가 사랑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벅찬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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