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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

by silversong 2021. 3. 1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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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영상저널

 

 

이상하기 짝이 없다.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떨 때는 상류층에 감정이입이 돼서 저 못 배워먹은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떨 때는 하류층에 감정이입이 되어서는 저 천박한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과거 많이 접했던 드라마에서는 중하층이 주인공이 되어 상류층의 핍박을 견디고

본인은 착한 상류층이 되는 신데렐라 형 스토리를 많이 봐 왔다면

현재에 들어서는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 비인간적인 면모와 더러운 속내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주로 접한다.

 

모두가 많이 소유하기를 원한다.

모두가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못 가진 자에게 시혜적인 태도를 지니면서 그들을 핍박하곤 한다.

못가진 자도 마찬가지이다.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훔치거나 우연히 손에 얻었을 때

그 작고 소중한 것 하나가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것보다 값비싼 것이라는 생각에 우쭐대곤 한다.

그리고 나는 가진 것, 못 가진 것 하나 하나 늘어놓는 태도가 못내 역겹다.

 

하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동화 속 인물들처럼 선과 악으로 간단하게 나뉘지 않는다.

나미네 가족에서도 나미의 아빠와 엄마, 할머니 간의 계급이 존재했고,

하녀들 간에도 계급은 존재했다.

기준을 누구에 잡느냐에 따라 자신의 높낮이가 결정되는 삭막한 집안에서 은이는 최약체였다.

보호받을 가족하나 없이 가장 높은 층과 내통했고 어쩌면 가장 높은 계급의 아이를 낳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냉담하고 은이는 계급상승의 동아줄이 끊긴 채 버려졌다.

은이는 그 아이를 상승의 발판으로 생각했을까?

그 맹한 아이가 자신이 가진 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은 했을까.

은이의 찍소리는 나미네 가족에게 요만큼의 흠집이라도 냈을까?

 

몇 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와 지금 저널을 쓰기 위해 다시 이 영화를 볼 때의 감흥이 사뭇 다르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은이가 미웠다. 늙은 하녀도 재수 없었다.

나미네 가족은 해라 빼고 다 별로였다.

근데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은이가 불쌍하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다 빼앗긴 은이가 너무 불쌍했다.

늙은 하녀가 왜 저런 마음으로 술을 마셨는지 이해 할 수 있었고,

은이에게 어떤 마음으로 병문안을 오고,

자살하려는 은이를 말렸는지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해라가 은이의 뺨을 날려야 했던 이유, 해라의 엄마가 해라에게 참으라고 하는 이유 모두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못 가졌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겨 보았거나 빼앗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평생에 빼앗길 걱정을 하지 않았던 사람인 나미 아버지도 모두 다 가지고 있지만

티끌만한 자신의 아이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하던데,

일생을 빼앗길 걱정을 하고 사는 사람은 속이 어떻겠나.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상대의 것을 먼저 빼앗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란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내 것을 조금 덜어 나누어 주면 모두가 행복한데, 내 것을 더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까.

밥그릇에 들어 온 밥은 꼴딱 삼키면 그만인데, 그것을 또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자랑을 하니까.

 

내가 너보다 티끌만큼 이라도 더 가졌다고 하는 꼴이 참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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