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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누구의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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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song 2021. 4. 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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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리즘 토크쇼 J 영상 저널

-전태일 사망 50주기를 맞아 뉴스와 노동에 대한 단상을 위주로

 

 

한 편의 기사는 세상을 바꾼다.

기자가 된다면 세상에 시민의 알 권리를 목표로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책과는 다르다.

우리는 뉴스를 공공재의 성격으로 바라볼 것인지 상품의 성격으로 바라볼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전자를 택한다면 기자로서의 뿌듯함이나 정의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높은 조회 수와 많은 월급, 빠른 승진 등을 얻을 것이다.

 

어느 쪽도 정답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정답으로 규정하는 시청자, 독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맞다고 떠들거든.

그러나 뚜렷한 지향점은 존재한다. 뉴스란 사건, 소식 등 진실을 전하는 콘텐츠이다.

비록 그것이 보기 역하고,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에 대한 공정하고 편파적이지 않은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유토피아적인 생각이다.

좋은 뉴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뭐랄까. 속되게 말해 머릿속이 꽃밭인 사람이 하는 것이다.

뉴스는 혼자서 취재해서 혼자서 이것이 진실이다.’ 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다.

뉴스 속에, 신문 속에 기자라는 이름으로 리포트를 하거나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하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사건 사고를 편파적이지 않게보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다른 저널에서 운동권들은 대개 사회 변혁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다 비슷한 부류들이고 한 가지 메인 스탠스 이외의 사회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때문에 특정 사회 운동권 한 사람을 집으면 그 운동 말고도 다른 활동들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뉴스도 이와 비슷하게 여러 활동들이 모인 곳이다.

뉴스는 많은 이들의 이익이 점철된 공간이다.

정부, 기업, 가해자, 피해자 심지어는 기자 본인마저도 각자의 이익에 맞추어 같은 사건을 해석한다.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게 분화된다.

나는 노동문제를 바라볼 때 기업의 지나친 이윤추구와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고찰한다면

누군가는 노동 문제가 기업의 이익을 떨어뜨리려는 악당들의 소란으로 본다.

한쪽에서는 산업재해로 죽었지만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한 희생자들을 기리고

한쪽에서는 소위 귀족 노조가 진짜 노동자들을 핍박한다고 매도한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다양하나 대체로 뉴스에서 드러나는 것은 뉴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다.

언론사에 세금을 매기는 정부, 광고를 들이는 광고주.

그래서 뉴스는 대게 이 두 진영의 이익을 대변하는 발언을 일삼는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이 같은 현상을 비판한다. 언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해 내는 기사들은 자극적인 단어와 수치들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공교롭게도 나는 방송을 보면서 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기사에 나온 숫자, 수치는 무시해라. 흐름을 봐야한다라는 말.

숫자는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마치 숫자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최근 코로나 보도를 볼 때 우리는 하루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의 숫자들로만 상황의 경중을 판단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하는 것은 혼란을 틈타 벌어지는 확인되지 않은 안전상식을 주시하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의 두려움을 강조하며 누구를 희생양으로 만드는지 알아야 한다.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이용해서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멋진 신세계를 쓴 헉슬리는 너무 많은 정보에 진실이 묻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의 우리들은 자극적인 제목과 출처를 알 수도 없고 신빙성도 떨어지는 자료들에 파 묻혀 진실을 잊고 있다.

개탄스러운 점은 이 모든 것을 정보의 소비자인 시청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전해주는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실제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은 본분을 잊고 정권의 개가 되어가고, 주님위에 계신 광고주님의 충신이 되어갔다.

이상은 유토피아에 가까운데, 현실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자정을 위해 이런 2차적 콘텐츠까지 제작하지만 여전히 달라지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뉴스보다는 자극적인 어그로성 기사가 더 재미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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