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았다.
미치광이 피에로 영상 저널
이토록 예술같은 영화가 있나.
대다수의 프랑스영화가 대중성이 없는 예술영화계열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대중성이 없다는 것 중 가장 큰 특징은 편집에서 감독의 스타일이 확고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그러한 부류의 영화를 재미없어 하곤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 똑같다. 재미없다.
나에게 이 영화는 지루한 전시회에서 틀어놓은 텔레비전 속 전시 프리뷰 정도이다.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것은 분명하다.
낱낱이 잘린 컷들, 수없이 변하는 화면, 의미를 알 수 없이 끼워진 예술작품들, 시시각각 변하는 색감들.
예쁘고, 소장하고 싶고, 캔버스 위에 그려져 액자 속에 끼워놓기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재미없다.
사실 재미가 없다 보다는 이상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
보고 있으면 만화경속을 떠다니는 것 같다.
철저히 하나의 작품을 보는듯한 느낌. 보고 있으면 내가 이상해지는 느낌.
이 기시감은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내가 느낀 것 같다.
관객의 과 몰입을 막기 위해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우리는 저 멀리서 이 영화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수없이 떠다니는 사랑, 증오, 전쟁 속에 하나의 유기체가 된 느낌이랄까.
미치광이 피에로의 진짜 이름은 페르디낭.
과거 연인인 마리안과 불륜을 하고 살인사건에 휘말려 도망을 치며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보통의 로드무비는 인물의 성장이 수반된다고 하는데 주인공들은 죽으면서 끝이 난다.
삶이 끝나는 순간에, 그 잠깐의 유예기간에 성장을 하는 것인가.
관객에게는 대리성장의 기회를, 주인공에게는 깨달음과 죽음을 주는 건가.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무언가를 깨달았을까.
글쎄, 사랑만으로 도망치기엔 현실은 더럽고 치사하다는 것과, 남자는 믿는 게 아니라는 것?
과거의 연인은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과, 여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주인공들이 이렇게 배우는 동안 나는 배웠다.
여러 의미로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것.
부모님과 함께한 파티에서 케이크를 던지고 도망가는 남자. 전애인과 불륜을 하는 남자.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과 다르게 시를 좋아하는 그, 사사건건 나를 무시하는 그.
결국 둘 다 서로를 배신하고 도망치는 것이 얄팍한 사랑의 민낯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도망을 다니며 연극도 하고 도둑질도 하지만
끝은 서로를 배신하고 마리안은 내연남과 도망치다 페르디낭의 손에 죽는다.
마리안을 죽이고 자살을 하려다 겁이나 멈추려고 한 페르디낭은 다이너마이트를 멈추지 못하고 자살에 성공한다.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고나면 대체로 주인공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주인공의 삶을 동정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아름답지 않고, 미치지도 않았다.
깜빡이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 가식적인 사랑의 민낯을 보여주는 영화.
마지막 장면과 대사는 서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보여주고 미친 건 아무도 없었다.
이 영화는 미치지 않았다.